잎차를 넣고 더운물을 부어 차를 우려내는 데 사용하는 찻그릇은 차를 즐기는 문화를 한, 중, 일이 오랜 시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다관, 중국에서는 차호, 일본에서는 규스 등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리면서 각 나라의 차 문화를 상징하는 역할을 오랫동안 계속해오고 있다.
자사호는 자사라는 부드러운 모래 한 가지로만 만든다. 그런데 이 모래는 찰기가 매우 적어서 그릇 형태를 만들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모래에 찰기를 주어 점력을 높이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이 기술은 개인의 능력과 실험정신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근본적으로 자사호가 귀하고, 가격이 비싼 이유도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제작의 어려움을 피해서 자사호와 유사한 차호를 만들려는 노력이 명대 후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한때 청자, 백자, 천목 같은 황제와 귀족들의 전유물이 권위주의적인 형태와 색깔로 지배하던 시대에는 어느 누구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것이 자사흙이다. 좋은 그릇이 되는 조건으로 가장 먼저 꼽는 것이 철분 함량이 낮아야 하는 것인데, 철분함량이 매우 높은 자사토는 따라서 아예 좋은 그릇 근처에도 갈 수 없는 버려진 흙이었다. 그런데 그 흙이 살아난 것이다. 살아나도 그냥 살아난 것이 아니라 중국 도예사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자사호를 보면 세상은 정녕 변화하는 생명체들로 이루어진 곳이며, 그곳에서 절대와 유일은 착갈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은 모든 것과 관계가 있고, 그 관계는 평등하며, 이 진리를 알면 행복해진다. 차 한 잔에 담긴 이 상대성의 아름다움이여.
그릇도 그 쓰임새가 유익하게 여겨지는 시대가 지나면 다른 그릇이 나타나게 되며, 옛 그릇은 제때에 퇴장하는 것이 그릇다운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수백 년씩 한 그룻이 억지를 부리면서 쓰임새를 강변하는 것은 추악하다고 했다. 계절과 밤낮의 순환에서 변화의 아름다움을 배우라고 했다. 이것은 무사정권의 권력욕과 탐욕을 포장하고 은폐시켜온 말차법과 차그릇에 대한 은유적 질타이기도 했다.
카마쿠라 막부 정치는 독재와 전제로 이루어졌다. 의리, 충성, 용맹을 이상으로 삼는, 무예를 존중하는 문화였다. 칼에 대한 숭배는 할복과 자살의식을 칭송했고 쇼군에게 충성을 바치는 사무라이의 삶은 피가 마를 날 없는 나날 속에서 서민들은 절망뿐인 세월을 보냈고, 가마쿠라 정권은 결국 망했다. 뒤이은 무로마치 막부 정권은 본격적인 차 문화의 번성기였다. 외국과의 외교권과 무역권까지 막부정권으로 넘어온 뒤여서 쇼군이 중국과 고려, 조선과의 외교를 전담했으며 외교관은 여전히 승려들이었다. 중앙의 쇼군은 지방 다이묘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외국과의 무역권 중 일부를 다이묘들에게로 이관시켰다. 결국 다이묘의 세력이 커졌고, 이로 인해 차츰 전국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제 사무라이는 무력만 갖추어서는 무시당했다. 참선, 서예, 꽃꽂이, 정원가꾸기 등 세련된 풍아의 미의식까지 갖추어야만 진정한 무사라는 평가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당, 송에서 수입한 도자기, 그림, 글씨에 대한 전문가적 안목까지 필요했다. 이렇게 시작된 다도와 함께 무사정권은 700년 가까이 일본을 지배했다.
그러던 중 1600년대 이후의 일본의 문인과 지식인들은 무사정권이 만든 다도가 지나치게 엄격한 격식에 따른 획일적인 문화임을 지적했다. 이 방식은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를 표현하는 것을 제한한다며, 가루차를 다완에 넣고 물을 부어 차선으로 저어 거품을 일으켜 마시는 차법인 말차도를 없애고 새로운 차법을 창안해야 한다는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워낙 긴 세월동안 일본인의 의식에 깊게 뿌리내린 문화여서 쉽사리 바뀌지 않다가, 1602년 시작된 에도 막부 시대에 와서 잎차를 마시는 전차 문화가 중국에서 들어와 일부 승려들 사이에서 유행하게 되었다.
말차법에서는 대접받는 다완과 차실에서 필요로 하는 찻물을 떠다두는 수주 정도만이 필요했으나 전차법에서는 잎차를 우려내기 위한 도구가 새로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규스이다.
아무리 아� 상처라도 역사로 껴안고 살다보면 그 속에서 또 다른 지혜와 깨달음이 자라난다는 철학적 인식을 찻그릇으로 형상화시켜 일상생활의 도처에서 만나고 있는 일본의 전차도는 그래서 일본적이고 아름다운 것이다. 모방은 흉내 내기에 그치면 아둔함이며, 창조를 위한 도전으로 실천하면 지혜의 빛이 된다.
한국의 다관은 형식 면에서 중국의 차호와 일본의 규스를 동시에 모방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제는 모방의 단계를 지나 한국인의 생활과 역사의식이 투영된 형식을 모색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한국의 다관이 세계미술의 경지로 진화하기 위한 고뇌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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