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람들은 기술적 변화나 진보를 날씨가 변화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생각한다. 과학적인 발명과 발전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든 사람들은 그것을 따라가야 한다는 믿음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인간의 본성에 어두운 면이 존재하고 개발로 인해 어떤 형태로든 수익이 생긴다는 것을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라다크에서는 그 개발의 진행과정에서 탐욕과 경쟁과 공격성의 경향이 가속되었고 사회붕괴의 가능성이 증가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전에는 기후를 변화시키거나 바다를 오염시키고 산림과 생태계를 파괴하는 일이 불가능했고 지금처럼 사회와 문화를 붕괴시키는 일을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붕괴 과정이 진행되는 규모와 속도는 이전 어느 때보다 방대하고 빠른 것이어서 역사적 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우리는 지금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미래에 대한 전망 역시 그렇게 밝지 않다.
대규모의 환경 파괴, 인플레이션 그리고 실업 사태 같은 문제들은 좌익이나 우익 같은 정치문제와는 상관없는 기술경제적 요인으로 생겨나는 것들이다. 세계는 지금까지 과학과 기술에 기반한 단 하나의 개발 모델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또 부수적으로 나타난 전문화와 중앙집중화로 인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마저도 무의미하게 만드는 극단적인 사회변형이 초래된 것이다.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세계가 너무 한쪽으로 치닫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도록 그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도시와 지방, 남성과 여성 그리고 문화와 자연 사이의 균형을 복원해야 한다. 라다크의 사례처럼 우리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해주는 상호연계의 의미를 이해함으로써 향후 나아갈 방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깊은 사유와 경험을 결합할 때만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거랍니다.
진보는 오늘날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보다 높은 단계로 접어들었다. 어느 곳을 둘러봐도 냉혹한 진보의 논리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하고 지역의 상호보완성을 글로벌 시장경제가 대신하고 웨일즈의 시골길을 고속화 도로가 대신하고 독일의 구멍가게를 대형 마트가 대신한다. 이런 추세를 보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차이를 따진다는 것마저도 무의미할 정도다. 그 두 사상 모두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른 피조물들과 분리하여 그 우위에 놓는 공통의 과학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고 또 두 사상 모두 자원의 활용이 무한하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차이가 있다면 그 자원을 어떻게 분배하는가 하는 문제일 뿐이다.
제3세계 농경 지역 국민들은 현대화된 생활의 이미지를 왜곡된 형태로 받아들이게 된다. 모든 사람이 아름답고 모든 사람이 깨끗하며 편안하고 화려한 생활, 바로 이런 것이 그들에게 비쳐진 현대생활의 이미지다. 그들이 보는 것은 빠르게 질주하는 멋진 승용차와 전자레인지 그리고 비디오 플레이어들이며 엄청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급여를 받는지를 전해 듣는다. 경제개발은 이제 세계 전역에 걸쳐 자동조정 장치에 의해 작동되는 듯한 모습이다. 특별히 계획된 개발 프로그램이 시행되지 않는 지역에서도 그것은 현대생활에 대한 일차원적 이미지를 전하고 있다. 그 이미지에는 물론 개발로 인한 부작용, 오염, 심리적 스트레스, 약물중독, 노숙자 같은 것들은 담겨 있지 않다. 경제개발이란 동전의 한쪽 면만을 접해본 사람들은 현대화에 대해 내성을 갖지 못한 채 그것을 열망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효과적인 반개발은 오늘날의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찾는데 있어 선행조건이 된다. 소비지향적이고 획일적인 문화의 확산이 중단되지 않는 한 빈곤과 사회분열과 생태계 붕괴를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은 없다. 그러나 반개발 자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기술의 획일성에 반대하는 것과 함께 지역 자원과 지식, 기술의 최대한 활용을 장려함으로써 생태와 문화적 다양성 유지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농경의 자립화는 경제체제의 중심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 여성의 시각과 가치관에도 동일한 비중이 주어져야 하고 가족과 공동체의 유대는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농업은 인간이 필요로 하는 가장 기초적인 것들을 공급하는 것이며 제3세계 인구 대부분의 직접적 생계수단이다. 그러나 농부의 사회적 지위는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낮은 상태에 머물고 있다. 경제 정상들이 모인 국제회의석상에서 농업은 더 중요한 다른 현안들의 합의를 가로막는 '장애물' 정도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실제 현재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다음 세대에 이르러 소규모 농업 종사자는 완전히 소멸되어 버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우리가 지금 시급히 해야 하는 일은 농업 자체에 그에 합당한 권위를 복원시킴으로써 앞서 언급한 추세를 반전시켜야 하는 것이고 또 농업을 정식 직업의 위상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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