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를 쓰지 않고 신화와 시만 남긴 인도인은 야만인일까? 역사가 '현재'에 교훈을 준다면, 세속적인 현재만큼 내세에 관심을 두는 인도에서 역사가 부족한 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그러나 인도에서 역사의 부재는 역사의 현존보다 엄숙한 그 무엇을 웅변하고 있다. 역사가 선을 달성하기 위해 투쟁한 이들의 집합적 기억이라면, 기록을 남기지 않고 침묵의 방식을 선택한 인도는 과거를 기억하기보다 '잊어버리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슬픔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약은 잊고 사는 것이다.
외부세계에 대한 무관심과 무거운 침묵은 인도 나름의 생존방식이었다. 한 시대의 영광을 뒤로하고 사라져간 '과거의 문명'과 달리 인도는 정복되고 파괴되었으나 굴욕을 침묵으로 견디고 '살아남은 자'를 통해 과거와 연결되는 살아있는 문명이다. "가치없는 돌 한조각이 황금술잔에 상처를 내도 그 돌조각의 가치는 늘어나지 않으며 황금술잔의 가치도 줄지 않는다"는 13세기 페르시아의 시인 사디의 시처럼 '황금술잔'의 역사는 계속되었다.
인도는 망각과 무시를 선택하여 정복한 자들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들었다. 때가 되면 지나가는 인도의 계절풍처럼.
인도를 정복한 영국이 죽음과 기독교로의 개종 중에서 택일을 강요했다면 힌두들은 기독교로 개종하고 정복자와 그들의 신을 칭송하는 찬가까지 지어 바쳤을 것이다. 그러나 힌두교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그대로 가슴에 남을 것이고, 그들이 받아들인 기독교는 세월이 갈수록 원형을 상실하여 힌두교의 일부로 바뀔 것이다. 인도인은 길게 살기 위해 잠시 죽는 방식을 선택했다.
용기와 자존심을 대변하는 아스텍의 사제들은 영웅적으로 행동하고 죽음으로써 아스텍의 역사는 끝이 났다. 비겁한 인도인의 선택은 적어도 인도의 생존을 보장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패배로 이어진 허약함은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그들의 전략이었다. 인도의 고전도 맹목적이고 직선적인 용기가 집단의 생존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가르친다. 싸움에 지고 이민족에게 정복되는 건 비극이지만, 더 큰 비극은 정복자의 문화와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정복자들은 오히려 인도에 흡수되어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800년에 걸친 이슬람의 영향과 200여 년의 영국 통치를 겪고도 인도는 지배자의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슬람교와 기독교로 개종한 많지 않은 사람들도 힌두의 전통적인 생활과 의식을 그대로 지켰다. 군사력에 근거하여 인도를 통치한 이슬람 세력과 영국은 '역사가 역동성을 수반하고 그래서 행동을 인도한다'는 논리를 근거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누군가 "전쟁은 누가 옳은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살아남는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도는 생존을 위한 전쟁에서 불리한 환경과 패배를 이기고 살아남았다. 바이런은 "인간은 미소와 눈물을 왕복하는 시계추"라고 노래했으나 인도의 역사는 수없이 패배한 눈물의 역사를 딛고 일어나 미소로 살아남은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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