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

禪과 精神分析 ( E 프롬, 鈴木大拙, R 데 마르티노 )

엔젤트럼펫 2006. 12. 21. 09:51
 

출생이란 하나의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다.

비록 그 비극은 우리들의 대부분이 충분히 태어나기도 전에 죽는다 하더라도, 생의 목표는 충분히 태어나는데 있다.

산다는 것은 매순간마다 태어나는 것이다. 이 탄생의 과정이 멎을 때 죽음이 생긴다. 생리학적으로도 우리들의 세포조직은 연속적인 탄생의 과정이다. 그리고 심리학적으로는 우리들 대부분은 어느 점에서 태어나는 것을 정지한다. 어떤 사람은 완전히 사산된 것과 같다. 정신적으로 그들의 갈망이 자궁이나 땅이나 암흑이나 죽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에 있을 때, 그들은 생리적으로 삶을 계속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들은 정신 이상자이거나 거의 그러한 상태에 가깝다. 많은 다른 사람들은 인생의 도정에 있어서 앞으로 전진한다.

평안한 상태란 충분히 탄생하는 것, 인간이 가능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기쁨이나 슬픔에 대하여 최대한의 수용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달리 표현한다면 일반인이 살고 있는 반수면의 상태로부터 깨어나, 완전히 깨닫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하면 그것은 또한 창조적인 것을 뜻한다. 즉 나 자신과 타인과,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반응을 나타내고 응답을 하되 - 있는 그대로의 전이(全人)으로서의 내가 있는 그대로의 모든 사람들과 모든 사물의 현실성에 반응하고 응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진실한 반응으로서의 행위에는 창조성의 영역이 존재한다. 즉 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고, 그것을 나의 세계로서 체험하는 영역이 존재한다. 이 세계라고 하는 것은 나의 창조적인 이해를 통해서 창조되고 변용된 세계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계가 저 너머에 있는 낯선 세계에서 이제 나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깨어난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이며, 그 사람의 자유는 다른 사람이나 자신에 의해서도 구속받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이제까지 의식하지 못하던 것을 의식하게 되는 과정은 인간의 내면적 혁명을 의미한다. 그것은 창조적이며, 지적 사고와 직관적이고 직접적 파악의 근원인 진정한 각성인 것이다.

 인간은 ‘인생의 창조적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그의 모든 행위는 독창성과 창조성과 그의 생생한 인격을 표현하는 것이다.


* 鈴木大拙

 과학적 정신의 서구인들은 그들의 지성을 생활의 수준을 올리는 모든 종류의 부속품을 발명하는데 사용하며, 불필요한 노동이나 고역이라고 여겨지는 것에는 결코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지성이 접근할 수 있는 자연 자원을 ‘계발’하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동양은 이와 반대로 천한 일에, 모든 종류의 손으로 하는 일에 몰두하는데 마음을 쓴다. 분명히 문명이 ‘계발되지 않은’상태에 불만을 갖지 않는다. 마음을 기계화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이것을 기계에 대한 노예로 여긴다. 이렇게 근로를 사랑하는 것은 아마도 동양인의 특징일 것이다.

 기계적인 생각들은 훨씬 능률적이며 많은 것을 이루도록 한다. 그러나 기계는 비인격적이며 비창조적이고 따라서 그 자체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지 못하다. 기계화라는 것은 지능을 의미하며 지능은 주로 공리적이므로, 기계 속에는 정신적인 심미나 윤리적 숭고성과 같은 것은 없다.


본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화가는 사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내면적으로 그것을 느끼고 스스로가 그것의 생명과 함께 하나가 되어 살아야 한다.


훌륭한 인격의 사람이란 그가 어느 곳을 가든지 간에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는 사람을 말한다. 그가 위치하고 있을 때 모든 것은 그와 더불어 정당하다.


마음이 혼란되지 않도록 하고, 외면적인 것을 추구하지 마라.


禪 : 자기에게로 향해서는 자기 자신의 자각을 추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향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돕고 자각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