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은 관용에 대한 호소이고 평화의 추구였다.
우신을 뜻하는 불어 'Folie'는 광기, 어리석음, 정신착란, 유쾌한 언행의 의미
에라스무스의 우신은 농담을 하듯 가볍게 시대의 어리석음과 사람들의 결점을 비웃으며 사람들의 불만을 대변해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자유를 느끼게 해준다. 에라스무스의 우신이란 결국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를 현자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만 바보로 보이는 존재임.
유머가 정신을 비추는 바로 그때에만 정신은 진정으로 심원한 것이 된다.
유머는 자유로운 정신에서 나온다.
적의에 찬 비판과 공격은 분열과 파괴를 가져오는 법이다.
에라스무스는 미덕이 인간성에 근거할 수 있다는 믿음, 관용이 열광만큼이나 적극적인 추진력이 될 수 있다는 믿음에 자신의 생애를 걸었다.
하찮은 일을 심각하게 다루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없고, 하찮은 것들을 가지고 진지한 일에 도움이 되게 하는 것보다 더 재치있는 일이 없다.
나는 화려한 수사로 장식한 아첨 일색의 말만 받아들이는 현대인들의 섬세한 귀에 감탄하고 있네.
특정한 사람을 공격하지 않고 대다수 사람들의 풍속을 비판하는 것이 진정 물어뜯는 일일까?
오히려 교화하고 충고하는 일이 아닌가?
어떤 종류의 삶도 제외하지 않는 풍자는 곧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악덕을 공격하는 것이네.
사람은 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장애 때문에 일에 성공하지 못한다.
하나는 정신의 명석함을 흐려놓는 망설임이고, 또 하나는 위험을 보여주어 행동을 못하게 만드는 두려움이다.
인생이란 저마다 가면을 쓰고, 무대감독이 그를 무대에서 내려보낼 때까지 각자 맡은 역할을 다하는 한 편의 연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게다가 무대감독은 같은 배우에게 다양한 역할을 맡긴다. 왕의 주홍빛 옷을 입고있던 자가 노예의 누더기를 걸치고 다시 등장한다. 어디를 가나 변장뿐이다. 인생이라는 코미디도 그와 다르지 않다.
삶은 결코 인간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는다. 삶에 집착할 이유가 적을수록 인간은 더욱더 삶을 붙잡고 늘어진다.
피타고라스가 된 저 수탉, 그 수탉은 모든 것이 되어보고 난 후에, 즉 철학자, 남자, 여자, 왕, 평민, 물고기, 말, 개구리, 내 생각인데 심지어 해면까지 되어보고 난 후에 인간이야말로 동물들 가운데 가장 비참하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모든 동물이 제 본성의 한계 안에서 삶을 받아들이는 데 반해, 인간만이 그 한계를 뛰어넘으려 애쓰기 때문이다.
작품의 어리석음은 현실세계의 합리성에 대한 심판이다 - 아도르노
전쟁은 국민에 대한 정부의 지배력을 강화하는지라 정부에게만 유용하다.
적들뿐만 아니라 자기 나라 국민에 대해서도 전쟁을 하게 된다.
전쟁의 결과로 "애국심은 시대적 명령이 되고, 전쟁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반역자가 되어 침묵을 강요당하고 투옥당한다". "한 나라가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적일지라도 국외에서는 매우 잔혹해질 수 있다" - 하워드 진
'마음의 양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역사란 무엇인가 (E. H. 카) (0) | 2006.12.27 |
|---|---|
| 이 땅에서 철학하기 (0) | 2006.12.26 |
|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0) | 2006.12.22 |
| 고독한 군중 (데이비드 리스먼) (0) | 2006.12.21 |
| 禪과 精神分析 ( E 프롬, 鈴木大拙, R 데 마르티노 ) (0) | 2006.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