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 내 글씨는 아직 단정짓기에 부족함이 있지만 나는 70평생에 벼루 10개를 밑창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
구양수의 추성부 - 누가 왔더냐. 궁금증을 못 이긴 선비가 큰기침을 내어 대신 물었다. 별과 달은 희고 맑고 은하수 하늘에 걸려 있는데, 사방에 사람 소리는 없고 소리는 나뭇가지 사이에 있습니다, 라고 동자가 대답했다.
구양수는 소리는 나뭇가지 사이에 있습니다 라는 말에, 아! 슬프도다! 이것이 가을소리로다. 어찌하여 왔는가, 라며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안타까움을 탄식했다
김홍도의 염불서승 - 연꽃 위에 앉은 스님의 뒷모습을 그린 이 그림은 단원 김홍도의 만년 작품이다. 웬만해서 화가들은 사람의 뒷모습을 잘 그리지 않는다. 인물화에서는 더더욱. 헌데 회색 가사를 입은 강파른 스님의 뒷모습이 그 어떤 법문보다도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사람으로 태어나 우주의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 그런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뒷모습까지도 아름답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스님인 그림의 주인공은 그러나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바로 부처이다. 깨달은 사람이다. 그것은 머리를 비추는 광배와 스님이 앉아 있는 연꽃 방석을 보면 알 수 있다. 흔히 연화대좌라 불리는 연꽃방석은 부처님이 앉는 자리를 의미한다. 연꽃은 더러운 물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수 있기에 부처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으리라. 그런데 이 연화대좌 또한 예사롭지 않다. 대부분의 불화에서 연꽃잎은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그래서 차분하고 정형화된 느낌을 준다. 위대하신 분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한 배려일 것이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기존의 불화 전통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형식을 차용했다. 생화를 쓴 것이다. 그 생화는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름과 섞여 구름바다가 연꽃대좌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여기에 인공적인 냄새가 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온몸에 금박을 둘러 왠지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과는 격리된 듯한 절집의 부처님이 아니라 실재하는 부처의 모습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 모두가 부처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그림으로 녹여낸 듯하다. 단원이 불교를 삶 속에서 느끼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한 사람의 제왕이 손끝으로 세상을 호령하고 있는 시각, 저자거리 한쪽에서는 아이들의 때묻은 동전을 벌기 위해 잡화 행상인이 물건을 내려놓고 있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있는 삶일까. 종묘에 묻힌 사람과 무연고자로 처리되어 거적때기에 싸인 사람...... 인생이란 무엇일까.
꽃은 꼭 한 번은 피게 되어 있어. 빨리 피면 빨리 시들고, 늦게 피면 늦게 시들지........그러니까 조금 늦게 핀다 해서 조급해하면 안돼. 알았지? 언젠가는 꼭 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해......
그래서 정말 때가 되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어야 해.......
이른 봄의 개화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물결처럼 흔들어놓는다. 그 붉은 꽃물결 사이로 햇빛이라도 파고들라치면 꽃들은 사무친 아름다움으로 몸을 뒤척인다. 뒤척이는 꽃 속에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지극한 아름다움은 지극한 슬픔이라는 사실을.
마음이 바쁜 탓이었을 게다. 이른 봄에 피는 꽃은 한결같이 잎사귀보다 꽃이 먼저와 맺힌다. 진달래와 개나리가 그렇고, 목련과 산수유가 그러하다. 편안하게 몸을 누일 잎사귀 하나 없이 어쩌자고 꽃들은 그다지도 급하게 세상을 향해 달려나온 것일까. 잎사귀없는 꽃을 보고 있노라면 그 대책없는 충동성에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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