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

反논어 (조기빈 저, 조남호, 신정근 역)

엔젤트럼펫 2007. 4. 5. 09:50

춘추시대는 노예제에서 봉건제로 전화하는 과도시기이며, 신흥봉건 생산 관계와 노예제 상부 구조 사이에서 발생하는 적대적인 모순 관계임

 

民이란 가축과 동류로 취급되는 살아있는 생산도구로서 애당초 성명이 없었다.

'인'의 경우에만 발언권 가짐

 

노예제 사회에서 빈부와 귀천은 오로지 '인'계급의 신분적 상승과 몰락이라든지 경제적 곤궁과 출세와 관련되지 '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교육은 人을 대상으로 실시했을 뿐, 民계급은 교육의 대상이 아니었다.

'논어'에서 敎民만 말하고 敎人을 말하지 않았다면, 이 때 '교'자는 '민'에게만 전문적으로 사용되는 특수 명사이지, 오늘날 말하는 '교육'의 의미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군자는 빈궁에 안절부절하지 않고 비천한 신분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지 않으며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신경쓰지 않는다

 

어떤 학파의 학문이란 늘 계급 투쟁의 요구로부터 형성되고, 계급투쟁의 발전에 따라 변화해 간다

학문이 하나의 사상 체계로 완성되려면 자연에 대한 인식이 전혀 언급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인 사회 과학 저작이 진정한 학문으로서 자리매김되려면 자기 이론의 최후 근거에 대한 설명은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자연 법칙으로 귀결되지 않을 수 없다

 

"물을 좋아한다"는 진술은 智者가 점진적인 방법으로 나날이 덕성을 향상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을 물의 성질에 비유한 것이다.

공구의 유비 논리에는 다만 인간화된 자연이 있을 뿐이지 자연화된 인간은 없다.

 

고대 전기 유가가 이러한 입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선진 시대 자연 과학 연구는 유가와 아무런 연관성을 맺지 못하고 묵가와 음양가의 전문분야로 되어 버렸다.

 

인간의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관에 의해 서로 멀어진다. 오직 최상의 인식능력을 가진 사람과 인식능력을 전혀 갖추지 못한 사람만이 변화할 수 없다.

 

한마디이지만 평생동안(끊임없이) 체험적으로 노력해야 할 말이 있습니까?

   ........... 아마 恕일게다

 

충서의 정의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人에게 부가하지 마라"

 

위치에 의지하거나 어둠과 밝음에 구애되거나 현재와 과거에 매달려서는 이치를 궁구하고 분별할 수 없다. 자신이 분별하는 것으로써 자신이 아직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마음 속에서 깊이 추리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