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

산에는 꽃이 피네 ( 법정스님) - 류시화 엮음

엔젤트럼펫 2006. 12. 11. 11:47
 

삶이란 우리가 누구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순간순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귀로 듣고 이해하면서 새롭게 펼쳐가는 어떤 기운 같은 것이다.

우리가 산다는 게 세 끼 밥 먹고 직장 왔다갔다 출퇴근길에 고생하며 사는 것, 이것이 사는 게 아니다. 그건 숨쉬는 것일 뿐이다. 삶은 누구에게서 배우는 게 아니라, 직접 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순간순간 이해하면서 새롭게 펼쳐가는 것이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내일 일을 누가 아는가. 이 다음 순간을 누가 아는가. 순간순간을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매순간을 자기 영혼을 가꾸는 일에, 자기 영혼을 맑히는 일에 쓸 수가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늙는다. 그리고 언젠가 자기 차례가 오면 죽는다. 그렇지만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늙음이나 죽음이 아니다. 녹슨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 삶이 녹슬면 모든 것이 허물어진다.


우리가 순간순간 산다는 것은 한편으론 순간순간 죽어간다는 소식이다.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녹스는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 단순한 삶을 이루려면 더러는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사람은 홀로 있을 때 단순해지고 순수해진다. 이 때 명상의 문이 열린다.


나는 아무것도 그 어떤 사람도 되고 싶지 않다. 그저 나 자신이고 싶다.

생은 덧없으니, 부지런히 자신을 점검하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자.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살아야 한다.

불교는 부처를 믿는 종교가 아니다. 스스로 부처가 되는 길이다.


‘ 隨處作主 立處皆眞 ’

(언제 어디서나 주체적일 수 있다면, 그 서 있는 곳이 모두 참된 곳이다)

어디서나 주인 노릇을 하라는 것이다. 소도구로서, 부속품으로서 처신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디서든지 주체적일 수 있다면 그곳이 곧 진리의 세계라는 뜻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내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내가 몸담고 있고 그 공간에 살아있기 때문에 내 자신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곳이 극락이고 천당이다. 어디서든 당당하게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타인이 아닌 바로 내 자신이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 바로 지금이지 다시 시절은 없다. 卽是現今 更無時節 ’

 ‘바로 지금이지 그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항상 현재일 뿐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다면 여기에는 삶과 죽음의 두려움도 발 붙일 수 없다.

저마다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자기 자신답게 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