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름다움을 사랑하되 사치로 흐르지 않으며, 지혜를 사랑하되 나약해지지 않습니다. 부를 자랑거리가 아니라 행동의 기회로 알고 활용할 줄 압니다. 가난을 인정하는 일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 우리는 스스로 정책을 만들고 올바르게 되는 일에 참여합니다. 토론은 행동에 지장이 되는 일이 아니라 행동하기 전에 미리 가르침을 받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말을 잘하거나 잘못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용기와 신념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됩니다.
니체가 말하는 '낙타형 인간'들이란?
낙타는 불평을 모른다. 주어진 먹이를 먹고 가라는 길을 갈 뿐이다. 이 동물은 '삶은 고난'이라고 여기며 지난한 생활에 탈출구란 없다고 믿는다. 남이 하는 말에 전전긍긍하고 자기 머리로 무엇이 가치있고 올바른지 생각하기보다는 자기보다 우월한 자의 말에 맹목적으로 순종한다.
반면 '사자형 인간'들도 있다. 이들은 여느 낙타들과는 다르다. 이들은 "아니다!"라고 말할 줄 안다. 순종을 강요하는 권위에 맞서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릴 줄도 안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은 '반항'일 뿐 '자립'은 아니다. 무엇을 이루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현실이 참담하기에 거부할 뿐이다. 대안은 늘 없거나 비현실적이다. 사자들은 결국 독기를 잃고 개처럼 쇠사슬에 묶여 동물원에 끌려갈 신세다. 세상이 부조리하여 혁명을 꿈꾸지만 정작 이루어야 할 이상이 사라진 인간, 이들이 바로 니체가 측은해 하는 사자들이다.
니체는 낙타와 사자들을 어떻게 치유할까? 그는 먼저 신부터 죽인다. 그가 죽인 신이란 무엇인가? 바로 끊임없이 무엇인가에 의지하고 싶어하는 우리의 심약함이다.
'낙타'집단이 갖고 있는 콤플렉스와 우울은 이렇듯 스스로 서지 못하고 절대적인 권위에게 인정받음으로써 삶의 안정을 찾으려는 나약한 마음에서 비롯된 탓이 크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그래서 "신은 죽었다"고 군중에게 선포한다. 무기력과 나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먼저 우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자기를 사랑하고 현실을 긍정하라! 니체가 낙타들에게 던지는 첫 번째 충고다.
반면, 사자들을 향해서는 또 다른 처방전을 내민다. 인상 쓰고 있는 사자들에게 니체는 "웃으라!"고 명령한다. 사자는 결코 웃고 있는 어린 아이를 이길 수 없다. 무슨 말이냐고? 사자는 자신을 위협하는 대상을 쓰러뜨릴 수는 있다. 그러나 그 후에 찾아오는 것은 끝 모를 허탈과 사라지지 않는 분노뿐이다.
창조자는 어린 아이처럼 웃고 있어야 한다. 무력감과 냉소는 중력처럼 우리를 끝없이 밑으로 끌어내린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놀이는 "무엇을 이루기 위해" 향해 가는 과정이 아니다. 그 자체로 즐거운 행위일 뿐이다. 웃음은 또한 절대적인 권위를 무너뜨린다. 위세를 떨치던 백인 우월주의 단체 KKK단이 약화된 이유는 엄청난 공권력 �문이 아니라, 그들의 비밀 교리가 슈퍼맨 만화를 통해 철저하게 희화되어 대중의 웃음거리가 된 탓이 크다.
니체는 말한다. "용기는 최상의 살해자다. 특히 공격적인 용기는!" 무력감과 패배의식은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밑으로 끌어내린다. 그 때마다 니체는 '달려들어 물어 뜯을 것' 을 우리에게 권한다.
타인과 사회가 맞추어 놓은 틀에 무작정 순응하며 사는 삶은 아무리 인정받아도 결국에는 박수치는 부모 없이는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유치원생의 모습과 같다.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으며 '나 만의 나'를 만들어 갈 때, 비로소 나는 낙타에서 사자로, 다시 초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자유는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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