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

관해기 2 서쪽바다 (주강현)

엔젤트럼펫 2008. 1. 7. 18:07

바다는 천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바다밭이 다르면 비록 같은 종일지라도 조금씩 다르게 마련이다. 보목포구와 모슬포의 '자리'가 같을 수 없으며, 보목 내에서도 여(암초)의 상태에 따라 '자리'의 색감과 생김새, 심지어 맛까지 다르다. 절기에 따라서도 알이 찬 '알찬자리', 자잘한 '쉬자리', 산란하고 난 다음에 잡히는 '거죽자리' 등 이름도 다르고 맛도 다르다. 이 책에서 일관되게 관심을 부여하는 대목은 이러한 생물종다양성의 문제이고, 이는 문화종다양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같은 '싹쓸이어법'의 시대는 물고기들에게 池魚之殃, 즉 아무 이유도 없이 밀어닥치는 재앙 그 자체이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생태환경이 보존되는 如魚得水의 그 날은 오지 않으련가.

 이 책에서 '자본의 시간'이 있다면, '자연의 시간'이 별도로 있으며, '바름의 시간'이 있다면 '느림의 시간'이 있다는 점에 방점을 찍고 있다. 바닷가에 가는 이들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고 싶어진다.

 평소에 차고 다니던 시계와 더불어 '자본의 시간'을 풀어버리고 자연력이라는 '느림의 재부'를 배우고 돌아오라!

 

문화유산이란 어떤 특정한 것, 특별한 것만이 아니다. 누대로 살아온 마을 자체가 문화유산이고 역사다. 간척으로 섬마을들이 사라지고 갯벌이 정연한 '바둑판형 신도시'로 변해갈 것이다.그러한 도시와 도로는 오로지 '부동산'에 긴박된 토지일 뿐 역사적 안거는 아니다. 슬프게도 그리고 무지하게도 우리시대는 그러한 역사적 안거들을 파괴하는 일상적 반달리즘에 젖어있다.

 

물새 노닐던 시화호의 옛 경관은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우리는 간척이란 직선적 사고로 일시에 '역사의 지문'을 없애버린다. 음섬이나 형도의 신화, 전설도 봉화대도 현실적 삶의 경제적 미래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역사의 지문을 일시에 없애버렸을 때, 그 미래의 삶은 얼마나 쓸쓸하고 터무니없고 황량한 것일까. 결과적으로 낡은 노트에 기록된 이러한 이야기들이 그야말로 '최후의 기록'이 되고 말았다. 사진 역시 '최후의 사진'이 되고 말았다. 갯벌 생물체들의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서 탄생한 시화호는 준공 이후 불과 수년 만에 '죽음의 호수'로 변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 죽음에 관하여 책임을 지는 이들이 없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인가. 다시금 새만금이 죽음의 호수로 변하리라는 것은 당연한 귀결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 새만금 역시 누구도 책임지는 이가 없을 것이다. 20여년 전, 형도 바닷가를 수놓던 아름다운 물새 떼를 떠올리면서, 오늘의 그곳에서 화석화된 조개껍데기의 무덤만을 확인하는 슬픈 관해의 소감이 이와 같은 것이다.

 새만금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시화호도 끝나지 않았다. 시화호가 미완의 장인데 바로 코밑에서 화옹호를 기어이 막았다. 세인들은 간척의 문제점은 인정하면서도 갯벌문제만 나오면 이제 지겨워한다. "듣기 좋은 노래도 자주 들으면 지겹다"는데 불길한 예언만 쏟아져 나오니 아무리 취지가 좋은들 약발이 덜 먹힌다. 간척론자들은 호재를 부른다. 결코 사회 공공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수자원공사를 비롯한 간척 주도집단의 '밥벌이'를 위해서 간척이 계속되고 있다는 주장은 대단히 설득력 있다.

문제점투성이인지라 종합 성적이 낙제점 이하인데도 책임을 지는 이는 아무도 없다. 잘못한 이들이 분명히 있음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불감증사회'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나름대로 생태계가 되살아나고 물고기도 돌아오고 심지어 돌고래까지 돌아오고 있다는 밑도 끝도 없는 낭설이 진실처럼 떠돌기도 한다.

 물고기가 쫓겨난 시화호는 사막일 뿐이다. 해수유통이 되면서 한결 나아졌고, 온갖 철새들이 몰려오고, 옛 갯벌은 갈대밭이 되어 야생동물의 보고로 변하였다. 공룡 알들이 발견되었다. 고래가 돌아왔다. 오염원만 제거되면 충분히 훌륭한 생태보고가 될 수 있다, 저마다 아우성이지만 어찌 이토록 무정하게 '무단가출'했던 오염된 바다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으랴. 이 책에서 소개한 시화호의 마지막 사진을 본다면, 과연 온갖 감언이설로 떠들고 있는 수자원공사의 주장에 부화뇌동하는 과학자들의 연구자적 양심이 의심스럽다. 시화호를 막은 주역인 수자원공사에서 만든 시화호 환경관리센터의 온갖 친환경적인 구호들에서 허망한, 심지어는 일종의 사후 약방문 내지는 '위선과 사기성'까지 느껴짐은 무슨 까닭일까. 이 모든 해결책은? 무식과격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동안 투자한 모든 것이 아깝더라도 눈 딱 감고 방조제를 허무는 길뿐이다.

 

서해는 애초부터 바다가 아니라 중국과 연륙된 뭍이었다. 뭍에서 실려온 미세한 퇴적물이 쌓이면서 갯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8미터에 이르는 조석간만의 차이는 드넓은 조간대를 형성했다.  오랜 조석운동의 결과는 양과 질의 변화를 가져와 바닷가에 변증법의 지평을 쌓았다. 그리하여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갯벌이 형성된 것이다.

인간에게는 억겁이지만 지구 나이로 보자면 서해 갯벌의 나이는 청년기에 불과한 고작 8천여 년. 갯벌생성은 서해안의 조석 변화를 끊임없이 반복해온 '청년운동'이라고 표현함이 어떨는지. 너무 흔하면 소중한 줄 모르는 법일까. 영국, 독일, 네덜란드를 포함한 북해 해안, 캐나다의 동부 해안, 미국 동부의 조지아 해안, 남아메리카 아마존 하구 등 일부 지역에서만 갯벌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배운다. 수차례 새만금을 찾았던 독일 홀스타인갯벌세터의 켈러만 박사는 새만금의 종 다양성에 관해, "세상이, 이런 갯벌이 있다니....."라며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2002년 새만금 법정의 증인으로까지 출석하여, "땅을 얻으려고 간척하는 것을 독일의 경우 나치시대에나 있던 일이다."라고 말하였다. 독일이나 네덜란드에서 더 이상의 간척은 사라졌으며, 오히려 방조제의 전부, 또는 일부를 허무는 복원사업이 추진되고 있다고 하면서, 갯벌을 지키면서 관광, 어업 등으로 벌어들이는 경제적 이득이 땅으로 인한 이득보다 높다고 하였다.

 그러나 증산, 수출, 건설을 지고의 좌표로 삼고 자란 우리는 여전히 간척지가 우리를 먹여 살릴 유일한 해법인 양 인식하고 있다. 소중함을 깨닫기 시작했을 �, 바다는 이미 결딴이 나 있었다. 우리 시대는 끝내 새만금 방조제를 막아버렸다. 무수한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또한 무수한 사람들이 지지하였다. 우리 시대의 수준이 그 정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