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

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 (손철주)

엔젤트럼펫 2008. 2. 8. 23:14

미술용어에 '텍스처'와 '마티에르'가 있다. 텍스처는 바탕을 이루는 결이다. 곧 소재 자체가 지닌 조직의 상태와 느낌을 말한다. 작품 중에는 화강암의 거친 결을 살린 돌 조각이 있고, 원목의 무늬를 살린 나무 조각도 있다. 마티에르는 질감이다. 회화기법에 따라 물감이 부여한 표면 효과까지 아우르는 용어다. 때로는 캔버스에 덩어리진 채로 남아 있는 물감의 부피를 지칭하기도 한다. 둘 다 재질감을 가리키나 인위를 가하기  전의 상태가 텍스처이고, 인위를 가한 후의 상태가 마티에르라고 보면 이해가 쉽겠다.

 텍스처나 마티에르는 작품을 이루는 성분이자 속살이다. 성분을 형상을 완성하지 못하나 형상은 성분으로 완성된다. 마티스와 반 동겐 등 야수파들의 작품, 놀데와 코코슈카 등 표현주의자들의 작품을 보노라면 그들이 창조해낸 회화적 이념이 순전히 색의 질감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강력한 왜곡과 거침없는 분노를 드러낸 그들의 형상은 원초적인 색깔, 섞거나 희석시킨 색이 아닌 순연한 색깔로 완성된다. 색의 질감이 내용을 결정한 것인 바, 텍스처와 마티에르는 스스로 발언하고 나아가 이야기를 꾸미고자 한다.

 우리의 전통문양도 마찬가지다. 텍스처와 마티에르는 기어이 제 힘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서사 구조를 지니고 있다. 문양은 알다시피 무늬다. 무늬는 사전적 의미로 '물건의 거죽에 어룽져 나타난 모양' 이다. 단지 징후에 불과한 '모양'이 구조를 가진 내러티브에 이른다 함은 수소와 산소가 합쳐져 물을 만드는 이치와 같아. 성분과 물체에 대한 현미경적 관찰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쉬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이테 무늬를 곰곰 들여다본 소설가 김훈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이테는 나무가 쓴 역사이다. 나이테는 비와 바람과 더위와 추위와 가뭄과 홍수를 기록하고 우주의 행성과도 교감한다. 이 역사는 인간이 해독할 수 있어서 나무와 인간은 서로 소통한다." 무늬는 징후이지만 마침내 징험하는 기록으로 인간과 소통한다. "한국의 전통문양"이란 책을 낸 임영주는 "우리 삶에 대한 한 편의 거대한 서사시처럼 읽히는 것이 우리의 전통 문양"이라고 했다.

 

"바탕이 무늬보다 나은 것을 '야(野)'라고 한다. 무늬가 바탕보다 나은 것을 '사(史)'라고 한다. 무늬와 바탕이 더불어 빛나야 군자라 할 수 있다. '야'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야하다'는 것과 같다. 질박하다, 상스럽다는 의미가 있지만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함의도 있다. '사'는 '화사하다'는 뜻이다. 물론 요즘 말로 세련됐다는 뜻도 된다. 요는 겉과 속을 함께 함양해야 군자라는 것이다. 결이 내용을 이루는 세계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인간의 상상력이 가난해질 수 밖에 없다. 공자는 '繪事後素'도 말했다. 갖춤이 있어야 꾸밈이 따른다는 뜻이다. 무늬는 혹 갖춤과 꾸밈의 한 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