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손택수지음, 정약전 원저)

엔젤트럼펫 2008. 3. 14. 16:31

누군가의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다.

이름을 짓는 행위를 통해 그와 나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관계에 놓이게 된다. 시인 김춘수는 '꽃'이라는 시를 통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의 이름을 불러 줌으로써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름을 짓고 그 이름을 불러 준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없이 어둠 속에 있던 존재를 '꽃'과 같은 존재로 거듭나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외눈박이 물고기가 있다. 물고기 이름은 '비목比目'이라고 한다. 반쪽이 잘려 나가서 눈이 하나밖에 없는 이 물고기는 나머지 반을 만나 합쳐져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머지 반을 만나기까지 그들은 온전한 생명체가 아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 나타날지 모를 반쪽을 그리워하며 평생을 보낸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비목' 이야기는 인간의 불완전한 삶에 관한 우화처럼 들린다. 우리 역시 비목처럼 늘 어딘가 허전한 결핍감에 시달리면서 살아간다. 결핍을 채우기 위해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벗들을 사귄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근원적인 결핍감은 쉬이 채워지지 않는다.

 

굴이나 말조개 등의 조가비에서도 볼 수 있는 눈부신 광채의 진주층은 고통과 상처를 이겨 낸 전복의 인내가 만들어 낸 무늬라는 점에서 숙연한 느낌을 준다. 연하디 연한 전복의 속살은 모래알처럼 미세한 이물질 하나에도 쉽게 상처가 나곤 한다. 전복은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상처의 고통을 견디면서 분비물을 만들어낸다. 이 분비물이 모래 알갱이 같은 이물질을 하염없이 감싸안으면서 영롱한 진주가 태어나게 된다. 고승들을 화장하면 그 몸속에서 신비하게도 하얀 사리 알이 나온다고 하는데, 진주는 끝없이 따끔거리는 삶의 고통을 승화시킨 전복의 사리 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약전이 '구슬'이라고 말한 게 진주다. 진주를 품고 있는 전복일수록 그 등껍질이 더욱 거칠다는 구절은 삶의 아름다움이 거친 세상과의 고통스런 대화 속에서 나온다는 걸 암시하는 듯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