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할 때, 헛되이 그냥 읽기만 하는 것은 하루에 천 번 백 번을 읽더라도 오히려 읽지 않은 것과 같다. 무릇 독서하는 도중에 한 자라도 모르는 것이 나오면 모름지기 널리 고찰하고 세밀하게 연구하여 그 근본 뿌리를 깨달아 글 전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이런 식으로 읽는다면 한 가지 책을 읽더라도 겸하여 수백 가지 책을 엿보는 것이다. 이렇게 읽어야 책의 義理를 훤히 꿰뚫어 알 수 있으니, 이 점을 꼭 알아야 한다.
두보의 시는 역사적 사실을 인용하는 데 있어 흔적이 보이지 않아 스스로 지어낸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다 출처가 있으니, 이야말로 두보가 詩聖이 되는 까닭이다. 한유의 시는 글자 배열법에 모두 출처가 있게 하였으나 어구는 스스로 많이 지어냈으니 그것이 바로 시의 大賢이 된 까닭이다. 소동파의 시는 구절마다 역사적 사실을 인용하되 인용한 흔적이 있는데 얼핏 보아서는 의미를 깨달을 수 없고 여러모로 살펴서 인용한 출처를 안 다음에야 그 의미를 통할 수 있으니, 이것이 그가 시의 博士가 된 까닭이다.
인간에게 性은 기호이므로 선을 행할 수도, 악을 행할 수도 있다. 이는 그가 일생동안 수많은 악인들을 만나면서 체득한 결론일 수도 있다. 정순왕후 김씨나 서용보, 이기경, 홍낙안 같은 인간들의 성품이 어찌 원래 순수할 수 있겠는가? 다산에게 선은 인간의 순수한 성품에 따라 자동적으로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산이 '맹자요의'에서 강조하는 것은 인간은 선을 좋아하는 성품의 기호를 길러서 자신의 결단으로 선을 선택하고 실행해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철학적 바탕 위에서 정약용은 自主之權사상을 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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