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할 수 없는 일에는 초연하라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 호모 루덴스다. 진짜에 대한 집념은 인간 본성인 창조의 힘을 소유에 대한 집착으로 끌어내린다. 창조를 다시 놀이의 세계로 되돌려주자. 이미 우리는 대가 없이도 끝없이 복제와 개작을 반복하고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네티즌들의 무한한 창조력 앞에서 자본을 대체할 새로운 문명의 서막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생활이 안정될수록 사람들은 점점 소심해지고 나약해진다. 위험은 실제로 닥쳤을 때보다 마음속으로 걱정할 때가 더 두렵다. 운명의 힘은 항상 아무리 노력해도 완벽하게 대비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안락한 삶을 잃지 않을까 하는 공포감은 미래를 대비하게 만들고, 이는 더 많은 재산을 움켜쥐려는 욕구로 나타난다. 주변 사람들이 자기 것을 뺏으려는 도적들로 보이기 마련이고, 관심이 늘 현재보다는 불안한 미래에 맞추어져 삶은 늘 초조하다.
편안하고 풍요롭지만 그것을 위해서 오히려 더 두려워하며 바지런을 떨어야 하는 삶, 안락함을 우리에게 선사한 문명은 오히려 개개인의 삶 속에서 심리적인 지옥을 만들어낸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성경 말씀이 왜 진리인지 새삼 느껴지는 대목이다.
각종 공연에는 관람 등급이 있다. 아직 판단력이 부족한 청소년들을 배려한 조치다. 그러나 성인들, 그것도 육십이 넘은 할아버지들까지 통제하려 하면 어떻게 될까? 그건 불필요한 고통일 뿐이다. 이미 자기 나름의 세계관이 굳어진 장년층들은 설사 파격적인 볼거리에 노출되었다 해도 좀처럼 오염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도 마찬가지다. 역사가 짧은 나라들은 자기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내세울 문화가 없기에, 국민들의 혼을 빼앗을 만한 외래 문명과 접하면 스스로의 정체성이 한 순간에 뿌리 뽑힐 수도 있다.
창조적 소비는 수준 높은 문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예술 활동은 귀족들을 위한 순수하게 '소비적인 활동'이었지만, 결코 '소모적인' 일은 아니었다. 그 결과 인류의 정신은 고양되었고 그에 따른 새로운 일자리도 생겨나지 않았는가!
현대의 문화산업도 마찬가지다. 문화 예술은 여가 활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창조력과 노동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 결과로 새로운 수요와 시장을 창출하기도 한다. 물건을 만들어내는 산업 생산은 새로운 소비를 창출하는 데 한계가 따르지만, 문화의 시장은 무한하다. 인간의 상상력은 끝이 없고 그에 따라 새로운 욕구와 필요가 계속해서 생겨나는 까닭이다.
인류는 역사상 최초로 노동의 필요가 사라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큰 패러다임이 바뀔 때는 그에 걸맞은 생각의 전환도 필요하다. '노동하는 인간'을 대체할 '소비하는 인간' 그의 탄생을 기대한다.
시민이 잘 길들여지고 국가가 국민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는 아버지 같은 문명국가일수록, 사람들은 부당한 지시나 명령에 별 비판없이 따르는 경향이 있다. 안정된 사회에서 자라난 신세대일수록 정치에 관심없다는 점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나 일본인들은 결코 개인으로는 악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높은 질서의식과 복종성향은 얼토당토않은 잔혹함을 낳았다.
바로 이 점이 발전할수록 '관용'이 중요한 덕목이 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모든 사람이 하는 일에 과감히 반기를 들고 '다르게' 말할 수 있는 것, 학교 같은 사회에서 이런 행동은'불량하고 악한 행동'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많은 이들을 불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론을 제기하는 소수의 사람들 덕택에, 사회는 지금의 법과 규칙이 제대로 되었는지를 비로소 고민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테네라는 살찐 말을 깨우는 한 마리 등에"이고자 했다. 그러나 이미 탐욕에 눈이 먼 아테네는 지배적인 가치관에 의문을 던지며 반성을 촉구하는 소크라테스를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자'로 규정하고 죽음을 내렸을 뿐이다.
그러나 모든 악은 선을 보완하는 작용을 한다. 배고픔은 음식을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하고, 어두운 색은 밝음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물론 선한 어린양들의 사회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어린양의 무리가 끝까지 도덕성을 잃지 않으려면 무리를 이탈해 목소리를 내는 '거친 어린양'들도 필요하다. 악을 '자신들과는 다름'으로 보고 끝까지 포용하려는 관용의 자세, 앞선 나라들의 선진적인 법 제도에는 이런 배려가 담겨 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뻔한 일상, 무의미하고 고단한 일상이 우리를 하루하루 소모시키며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듯한 절망감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삶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치열하게 만드는 무엇, 너무나 간절하기에 삶의 전부를 기꺼이 희생해도 좋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구한다. 그것이 바로 '이상'이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길들여진 짐승의 자유와 같다. 울타리 없이 자유로이 노니는 듯 보이지만 목동들이 정해놓은 보이지 않는 선을 넘으면 회초리를 맞게 되는 그런 자유 말이다. 우리에게 그 보이지 않는 선을 만들어준 것이 바로 정보기술이다.
우리는 눈에 띄지 않게 철저히 감시당하고 통제당하는 속에서 안전하고 자유롭다. 말 그대로 '예속이 곧 자유'인 사회다.
이제 자연은 인간의 행동을 거의 제재할 수 없다. 과학으로 전능해진 인간은 이제 뭐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행동이 가져올 결과는 그만큼 엄청나졌으며 그 책임도 인간 스스로 져야 한다. 그래서 전능한 인간은 야만을 두려워할 때보다 더 괴롭다. 무엇이 바람직하고 옳은지에 대한 철학적 숙고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역사란 무의미의 바다 속에서 조개를 줍고자 하는 마음에 지나지 않는다 - 슈펭글러
삶을 뛰어넘어 추구해야 할 절대적인 이상이나 가치란 있을 리 없다. 언젠가 덧없이 끝나고 말 우리네 삶은 언제나 마음을 헛헛하게 한다. 그래서 인간은 영원한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역사는 인류의 범죄, 어리석은 행동, 행운의 기록장에 지나지 않는다 - 에드워드 기번
역사는 자유의 확대과정 - 헤겔
'마음의 양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세계의 교양을 읽는다 (최병권, 이정옥 엮음) (0) | 2008.05.13 |
|---|---|
| 열하일기 (박지원 원저, 고미숙 지음) (0) | 2008.04.25 |
|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덕일) (0) | 2008.04.10 |
| 고슴도치의 우아함(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0) | 2008.03.31 |
|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손택수지음, 정약전 원저) (0) | 2008.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