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

열하일기 (박지원 원저, 고미숙 지음)

엔젤트럼펫 2008. 4. 25. 13:50

어느 시대건 공인된 이념이란 사람들을 경직시키는 법이다. 국가의 권위, 권력의 위엄이 모두의 동의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숙연해진다는 건 달리 말하면 분위기가 냉각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분위기에선 누구도 자기의 속내를 말하려 들지 않는다. 동의하거나 침묵하거나, 그 이상의 소통은 불가능하다.

 

갓난아기가 우는 건 슬퍼서 우는 것도, 두려워서 우는 것도 아니다. 열 달 동안 엄마 뱃속에 있다가 넓은 세상으로 나와 사지를 마음껏 펴게 되자 너무 시원하고 기뻐서 마음껏 울어 젖히는 것일 뿐이다. 그 감동과 환희를 표현할 길이 울음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존재와 삶에 대한 무한긍정으로서의 '울음', 그것은 실로 칠정이 극한에 도달했을 때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안팎의 경계도 없고, 어떤 분별에도 걸림이 없는, 이를테면 무아의 경지에 해당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라면서 신분이나 관습, 제도 등 온갖 장벽에 예속되는 바람에 이 울음의 참맛을 잃어버린다. 남은 건 상투적이고 메마른 일상과 감정들, 그러므로 삶의 진면목을 맛보고 싶다면 무릇 이 울음의 생기를 되찾을 일이다.

 

깊고 지극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귀와 눈이 마음의 累가 되지 않고,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잗달아져서 갈수록 병이 된다.

 

인간 세상의 가지가지 일들은, 아침에 무성했다가 저녁에 시들고, 어제의 부자가 오늘은 가난해지고, 잠깐 젊었다가 갑자기 늙는 법이다. 거울 속의 장면이 마치 '꿈속에 또 꿈'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니, 생과 사, 있음과 없음 중에 대체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이리오. 그러니 세상에 착한 마음과 보살심을 지닌 형제들에게 말하노라. 환영에 불과한 세상에 몽환 같은 몸으로 거품같은 금과 번개 같은 비단으로 인연이 뒤엉켜 기운에 따라 잠시 머무를 뿐이니, 원컨대 이 거울을 표준 삼아 덥다고 나아가지 말고, 차다고 물러서지 말 것이며, 지금 당장 몸에 지닌 재산을 흩어서 가난한 이들을 두루 구제할지어다.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면서 깨달았듯이, 연암이 생각하기에 사람들은 오직 눈과 귀만을 믿기 때문에 사물이나 사건의 진면목을 보지 못한다. 소경이 갑자기 눈을 뜨게 되면 길을 잃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색채들의 범럼 속에서 방향과 감각이 뒤죽박죽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청각과 촉각 등 이전에 활발하게 작동하던 감각들까지 혼란에 휩싸이고 만다. 결국 눈을 얻는 대신, 삶을 잃어버리는 역설에 처하는 셈인 것. 어디 소경만 이러하랴. 우리네 삶이 온통 이런 식일 터, 보이는 걸 그냥 좇다 '無明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일이 실로 허다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소경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도로 눈을 감아야 하듯, 우리 또한 보고 듣는 것에만 의존하는 분별을 멈춰야 생의 진면목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