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부자놈들이 아무에게도 빌려주지 않는 장남감이지요.
행할 줄 아는 자들은 행하고, 행할 줄 모르는 자들은 가르치고, 가르칠 줄 모르는 자들은 가르치는 자들을 가르치고, 가르치는 자들을 가르칠 줄 모르는 자들은 정치를 한다.
냉소적인 사람보다 더 유치한 건 없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여전히 세상엔 어떤 의미가 있다고 악착같이 믿고 있고, 또 유년시절에 들었던 유치한 관념들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와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인생은 개 같고, 나는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믿지 않고, 나는 질리도록 인생을 즐길 거야"라는 말은 불만에 찬 유치한 인간의 말일 뿐이다.
누군가 사회의 위계질서 내에서 자신의 무능력에 정비례하여 위상이 높아진다면, 세상이 지금 돌아가는 것처럼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무능력자가 아주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현실만큼 더 혹독하고 부당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즉 인간들은, 행위가 아닌 말이 힘을 갖는 세상, 최고의 능력은 바로 능변인 세상에 살고 있다. 끔찍한 일이다. 왜냐하면 결국 우리는 먹고 자고 생식하고 정복하고 우리 영토를 안전하게 지키도록 계획된 영장류이다. 그런데 이 일에 가장 특출한 사람들, 우리들 중 가장 동물적인 사람들이 항상 다른 사람들, 말 잘하는 사람들에게 잡혀 먹히기 때문이다. 반면 이 말 잘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원을 지키거나 저녁식사를 위해 토끼를 잡아오지도, 혹은 제대로 생식하지도 못한다. 우리는 가장 약한 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건 우리의 동물적 본성에 아주 끔찍한 모욕이고, 타락이며, 깊은 모순이다.
다도는 단순히 무얼 마시는 것이 아니다.
다도가 의례가 되면, 그것은 작은 것들 속에서 거대한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의 핵심을 구성한다.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가? 다른 것들처럼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거대한 것들 속에? 혹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순간 속에 영원의 보석을 박아넣을 줄 아는 작은 것들 속에?
차의 의례, 동일한 몸짓과 동일한 시음의 정확한 유지, 단순하고 진정하고 세련된 감각에의 도달, 차는 부자들의 음료이면서 가난한 자들의 것이기 때문에 적은 돈으로도 우리 모두 미각의 귀족이 될 수 있도록 해주며, 우리 인생의 부조리 속에 고요한 조화의 틈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해주는 놀라운 미덕이 있다.
그렇다. 세상은 공허함과 결탁하고, 실추한 영혼들은 아름다움에 눈물짓고, 무의미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그러니 한 잔의 차를 마시자. 침묵이 형성되고, 바깥에서 부는 바람 소리를 듣고, 가을 나뭇잎들이 살랑대며 날아가고, 고양이는 따뜻한 불 아래서 잠잔다. 그리고 차를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시간은 승화된다.
우리는 늙어가고, 그건 아름답지도 좋지도 즐겁지도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중요한 건 지금이라는 걸 생각해야 한다.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모든 자신의 힘을 다해, 지금 뭔가를 구축해야 한다. 매일 자기 스스로를 극복하고, 그 매일을 불멸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양로원을 항상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어야 한다. 자기만의 에베레스트를 한 발짝씩 기어오르고, 그래서 그 발걸음이 조금씩의 영원이 되도록 기어 올라야 한다.
미래, 그건 산 자들이 진정한 계획을 가지고 현재를 구축하는데 쓰인다.
예술은 무슨 쓸모가 있을까? 그것은 동물적인 논리로는 환원 불가능해 보이는 정서적 틈을 시간 속에 열어놓으면서 동백꽃의 순간적이지만 빛나는 환영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예술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그것은 감각적 영역을 조탁할 수 있는 정신의 능력에서 잉태된다. 예술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는가? 그것은 우리의 감동에 '형태를 부여하고', 그 감동을 가시화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특별한 형태를 통해 인간적인 정서의 보편성을 구현할 수 있는, 모든 작품이 보유하고 있는 영원성이라는 낙관을 찍는다.
생은 많은 절망이 있지만, 또 다른 종류의 시간인 아름다움의 몇 순간들도 있다. 마치 음악의 한 소절이 시간 속에 일종의 괄호와 정지를, 바로 여기 속의 다른 곳, '다시는' 속의 '언제나'를 만드는 것처럼.
그래, 바로 그거다. '다시는' 속에 있는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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